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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라며 웃었다. 당일 박진영이 ‘날 떠나지마
작성자유진초이
작성일/25-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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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유포협박 부르는 걸 보며 수천 명이 환호했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나는 박진영의 팬이었다. 그가 비닐바지를 입고 방송에 나왔을 때 ‘이거다’라고 생각했다. 한국이 다른 리그로 진입하던 시절이다. 가요는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 데뷔와 함께 K팝으로 진화하기 시작했다. 드라마는 1992년 ‘질투’로 트렌디 드라마 시대로 진입했다. 영화는 1997년 ‘접속’과 1999년 ‘쉬리’로 충무로 시대를 끝내며 웰메이드 시대를 열었다. 80년대가 정치적 격동기였다면 90년대는 문화적 격동기였다.
박진영은 그런 시대의 아이콘이었다. 그 시대는 아이콘이 지나치게 많았다. 아직도 아이콘이라고 불린다면 정말 압도적인 아이콘이었다는 의미다. 무엇보다도 그는 속 시원했다. 금기라고 불리는 걸 하나씩 깨뜨렸다. 비닐바지는 그런 아이콘의 아이콘이었다. 언론은 민망하다고 난리가 났다. 룰라 김지현이 엉덩이 때리는 안무를 하자 역시 선정적이라 욕먹던 시절이다. 언제나 그렇지만 한국 언론은 새로운 게 나오면 엄중하게 꾸짖는 걸 참 좋아한다. 박진영은 금기를 깨는 영역에서 요즘보다 더 앞서 나간 부분들이 있다. 1995년 ‘엘리베이터’ 가사를 한번 떠올려보시라. ‘엘리베이터에서 우린 사랑을 나누지 / 지하에서 위층까지 벨이 울릴 때까지’ 지금 나와도 선정적이라고 난리가 날 가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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